이난영, 정말 수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고고의 애절한 음색과 절도를 나타내는 천재 가수.얼마전부터 이난영 목포의 눈물이 생각납니다. 1916년 6월 6일 전남 목포에서 출생, 이미 10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유명하게 되서 일본에서도 조선 최고의 여가수로 유명하게 되었다. 마침내 1935년 불후의 명곡, 목포의 눈물의 발표(이 강남던년 19세)나라 잃은 조선 전체의 애창 가요에서 폭발했습니다."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저력이자 뜨거운 눈물입니다. 김소월 진달래꽃이 생각나는 이유와 같습니다. 6.25전쟁 때 남편의 납치와 사망 소식과 그 뒤 당대의 천재적인 남자 가수 남 운동과의 불륜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사랑.... 남인수의 폐결핵 사망 때까지 곁을 지키던 이 난영... 1962년 남 운동 사망(남 제인스가 1918년생 2년 연하) 1965년 4월 11일 49세에서 쓸쓸히 사망(알코올 중독 등 쇠약에서) https://youtu.be/1bIl-LF0fBs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이 목포의 눈물을 불렀지만, 이난영처럼 애타게 곡에 빠져 감동적으로 부르는 가수가 아직 없습니다.이난영 그녀는 그저 가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천부적인 감성과 특유의 애절하고 가랑가랑한 목소리, 매우 절제된 목소리로 목포의 눈물을 마치 절개와 한을 읊듯 노래하는 데 반해 이미자에서 김 영자, 심수봉 요즘 송가인까지. 그저 평범한 가수가 열심히 노래하는 것이지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어떤 분은 코 코맹이에 답답한 목소리라고 혹평하시거든요... 잘 들어 보세요 그 콧소리가 그저 기교가 아니라는 것을...다른 가수는 이 난영같은 안타까움과 한이 조용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저는 도저히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다른 가수들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비교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엄청난 감동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100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똑같이 부르는 가수가 나타나지 않네요...정말 유감입니다. 오래된 앨범으로 되물어도 압권 압권이라는 말 말고는 딱히 할말이 없고.이난영 이후 많은 가수들이 부른 것을 다 들어봐도 차이가 나서 이난영이 부르는 것에 반쯤 가창력이라고 생각합니다.이미자 주현미 심수봉 김 영자..최근의 금가인.. 굳이 이남영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입니다. "심수봉이 그래도 깊은 곡 해석으로, 이남영에게 접근하는 가수이긴 하지만, 이남영과는 목소리와 창법이 조금 다릅니다. 물론, 킴 영자나 송가인보다는 한차원이 높은 레벨이 심수봉입니다.그정도로 이남영 목포의 눈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완벽한 해석과 고고하고 애절함이 깔려있는 목소리입니다.제발 꼭 한번만 그녀와 90프로 이상 같이 고고하고 개척하다고 점잖게 부르는 가수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수많은 여가수들... 그저 열심히 목포의 눈물로 불렀을 뿐입니다.이난영은 그냥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절개와 지조, 정절과 원한을 그대로 드러내고 당당하고 처절하게 불렀습니다. 그 차이 이해가 되나요?수백 년에 한 명씩 나오는 목소리라... 아마 제 평생 안나올거 같은데, 후세에 아마 나올거에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아직도 그녀의 70%도 없었거든요. 앞으로 언젠가 그런 신이 준 목소리와 가창력 가수가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잘 이난영의 사진을 그녀의 말년 60년대의 사진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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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도 60년도 TV공연에서 그녀가 세상을 떠난 몇년 전의 얼굴입니다. 많이 상처받았어요 어색한 내레이터가 노래 감상을 방해하는데 그때는 멋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TV쇼라서 그랬군요. https://youtu.be/URyYRoi_B1A?list=PLTmNX6-jXpxUE-Do2TsRiIcf4oIvSB6WI&t=52
그녀가 부른 "목포의 눈물"은 한반도 민중과 만주 등 일본을 피해 외지로 나간 동포들까지 부르던 노래가 됐다. 1935년 발표 때 그 20살 때 이 난 용은 바로 밑의 청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그녀의 전성기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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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그녀의 명곡이자 형 이봉룡이 작곡한 목포는 항구다.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와 발성이 돋보인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목소리의 애절한 감성의 가수는 이남영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 없다. https://youtu.be/_wADhLphIB4?t=32
사진: 끝까지 그녀의 연인가수 남인수와 이난영 (왼쪽 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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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키운 김시스터즈를 미국에서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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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가 진주 출신으로 남인수,고복수,박시춘 등 당대 최고의 가수와 작곡가들을 옆에서 보면서 그들과 다니면서 좋아했습니다.물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혹독한 환경 때문에 비운의 무명가수로써 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기타와 노래 그리고 그림솜씨는 유명했습니다. 두만강 김. 정국보다 고복수 남인수 이난영을 당대 최고로 인정하고 기타를 치면서 城황성고적터을 부르기도 했습니다.저의 아버지는 고복수와 많이 닮은 얼굴로 목소리도 비슷하지만, 굳이 고복수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저의 아버지도 이난영과 황금심(고복수의 아내)을 여가수로는 최고로 인정하셨습니다. 특히 이난영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하셨죠.이매자나 다른 가수들과는 분명 격이 다른 가수라고요.. 저도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어요. 나이가 들면서부터요......아버지가 좋아하던 고복수의 황성 옛터와 그 부인의 소녀같은 외모와 모습으로 당대 남자들의 인기였다는 황금심이 충실한 당신을 하청해봅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은 그들의 전성기 발표 때 모습보다 훨씬 뒤.. 60년대 TV에서 나온 모습입니다.그들이 발표한 20대 시절의 모습과 목소리가 아닌 것이 아쉽네요. 그거 아세요~액 복수(코・복스):타향살이 https://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E8486425DCED73B01110FE44E375996D932D&outKey=V128fa2c31d052ca9beb1da0b300a64198f86cb858a33bdd1b7b1da0b300a64198f86&width=544&height=306
팬 쿰심:절약한 당신 https://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BE7DB4320610D0D44D640FC3B833223888E9&outKey=V1210964397f2e5af917020b7933a170cba144a3441e106cea72c20b7933a170cba14&width=544&height=306
2009년에 제작한 특집 다큐멘터리 이 난 연 그녀의 노래와 생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https://youtu.be/uUed3Cjskt8?t=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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